티스토리 뷰
목차
1. 영화 소개
살면서 우리는 종종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마주할 때가 있다. 어떤 일은 분명히 내 눈앞에서 일어나지만, 그 본질을 이해하기가 어렵기도하다. 어떤 사람은 분명 가까운 것 같은데 그 마음을 쉽게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어떤 감정은 내 안에서 타오르지만, 그 불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그런 불분명한 감정과 모호한 현실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시작해 단순한 각색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실과 개인의 내면을 더 깊이 파고드는 방식으로 확장된 작품이다. 감독은 원작이 가진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현재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불안과 공허함을 잘 담아냈다.
버닝은 단순히 사건을 쫓는 스릴러가 아니다. 이 영화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공기,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위태로움이란 것에 집중한다. 영화는 철저히 주인공 종수의 시선으로 전개되며, 관객도 그와 함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해미가 정말 존재하는지, 벤이 말하는 ‘헛간을 태운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영화는 이러한 모호함을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이 정말로 사실인지 다시금 의심하게 만든다.
버닝이 특별한 이유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종수의 불안과 의심하고, 결국 그 감정의 근원을 스스로 찾아간다. 이 영화는 우리가 당연하게 믿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깨닫게 해주고,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찾도록 만든다.
2. 줄거리
영화는 평범한 청년 종수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는 지방 출신으로, 꿈을 꾸기에는 너무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는 법적 문제로 감옥에 있고, 그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 친구였던 해미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해미는 자유롭고 신비로운 인물이다. 그녀는 종수에게 아프리카 여행을 떠날 것이라며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종수는 그녀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정작 해미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녀의 곁에는 벤이라는 남자가 함께 있다.
벤은 종수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부유하고, 세련되고, 신비롭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지만, 언제나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는 종수에게 묘한 불안을 준다.
어느 날, 벤은 종수에게 자신이 때때로 헛간을 태운다고 말한다. 그 말은 단순한 농담 같기도 하고, 섬뜩한 암시 같기도 하다. 이후 해미가 갑자기 사라진다.
종수는 그녀를 찾기 위해 벤을 따라가지만, 해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마치 그녀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종수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지고, 벤에 대한 의심과 분노가 쌓여 간다. 결국 영화는 불길한 결말로 치닫는다.
영화에서 종수는 조용하고 소심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점점 더 커지는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쉽게 터져 나오지 않는다. 그는 화를 내지 않고, 항의하지 않고, 그저 속으로 삭인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야 폭발한다.
3. 총평 및 후기
1)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버닝을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모호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종수는 해미를 사랑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해미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벤은 친절한 것 같지만, 동시에 섬뜩하다. 그가 정말 헛간을 태웠는지, 해미를 해쳤는지, 우리는 끝까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가끔 그런 감정을 느낀다. 어떤 사람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혹은 내가 분명히 어떤 일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사실이었는지조차 헷갈리는 순간. 버닝은 그런 불확실한 감각을 영화적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2) 보이지 않는 분노
이 모습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쩌면 나도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일에 화가 나지만, 사회적인 시선이나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그 감정을 억누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억눌린 감정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기 마련이다.
3) 후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내 감정에 좀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감정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로 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누군가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그 뒤에 어떤 사연이 있을지를 먼저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한다.
나는 오랫동안 많은 것들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일까? 내가 믿고 있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그리고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버닝은 쉽게 잊히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영화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